1970년도에 대종회가 창립된 이후 초대 李乙 선생을 비롯하여 제24대 洪執 선생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종회 회장님들께서 대종회 발전과 선조의 가훈과 종원 상호 간에 돈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많은 기여를 하였다. 역대 회장님들 이외에 대종회 발전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간략히 소개한다.
李光䄵(이광년) 선생
충장공 병사공 강화문중 光䄵 선생은 선대께서 서울 서빙고에서 거부로 살고 계시면서 교육사업과 종중사에 수차례 거금을 희사하고 종인들에게는 많은 온정을 베푸신 집안이다. 병사공파 강화문중 가첩기록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무후공 위토를 수원파 종손이 ㅍ판 것을 光䄵 씨의 조부 敬錫公(경석공) 찾아 놓으셨는데 1899년에 또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에 저당한 것을 거금을 지불하고 되찾아 놓으셨다. 서울 각심사에는 宋溪公(송계공)의 위토도 장만해 놓으셨다. 경석공께서는 서빙고에 서당을 위시하여 사립보통학교를 설립하여 신교육사업에도 공헌하셨다. 현재 서울에 송계공 위토는 도시계획으로 처분한 기금으로 용인에 충정공묘하에 빌딩을 장만하여 송계공파 종중사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무후공 후손들이 수백년 내려오면서 염원하던 무후공 사적비 건립을 5년간 각고 끝에 光䄵 선생께서 소요되는 거금을 단독으로 부담하여 무후공묘하에 건립하도록 하였다. 光䄵 선생께서 조부 경석공에 이어 대를 이어 종중사에 헌신적으로 물심양면으로 공헌하심은 평소의 승조사상의 투철한 발로라고 아니할 수 없다.
李仁俊(이인준) 선생
李仁俊(이인준) 선생은 추밀공 세본.세온파 양덕문중으로 실향민 1세이다. 교사였던 仁俊선생은 초대 대종회 이을 선생을 청해이씨 대종회를 창립에 실무적으로 크게 기여하였다. 교사출신인 仁俊(인준) 선생은 문장력이 뛰어나 대종회의 각종 문서 작성과 청해백 사료 정리 등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초대 상무이사를 시작으로 7대에 걸쳐 상무이사로 헌신하여 대종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李氣乙(이기을) 선생
李氣乙 선생은 추밀공 승노공파 북청문중으로 미국 워싱턴대학교 경영학 박사로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정년 퇴임 후 청씨이씨 숭노공파 문중일에 관여하시게 되었고 1993년에 청해이씨 승노공파(하천리)세보를 편찬하였다. 세보에는 북청의 연혁과 시조 이지란 할아버님의 사적은 물론 역대 주요인물과 최근 지명인사 등 후손들이 알아야할 사항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여 단순한 세보에서 한 문중의 사료를 정확한 고증과 문헌을 토대로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절 중앙고보 재학 중 독서모임을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정신을 길렀으며 일제 경찰에 의해 불온독서클럽 사거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어려움을 겼었다. 이런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문재인 정부 시절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선생의 장남 一昺(일병)은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 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문재인 정부 외부무장관을 역임한 강경화가 배우자다.
道成(도성) 큰 스님(속명 陽鎬)
도성 스님은 추밀공 세번. 세온파 양덕문중으로 일찍이 불교에 입문하여 큰 스님이 되었다. 한국에 최초로 남방불교를 도입하여 널리 전파하였다. 불교 전도 관계로 동남아시아와 대만 등을 방문하였는데 대만에서 악비장군의 후손들을 만나 청해이씨 이지란 시조가 중국 남송의 명장 악비의 7세손인 것을 알리고 이를 계기로 중국 악씨문중과 청해이씨 간에 교류가 있게 되었고 악비세가에 청해이씨 추밀공파 양덕문중의 세계를 기록하게 하였다.
李億性(이억성) 선생
李億性 선생은 무후공 효온공파 독정문중으로 독정문중의 제향이나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후손들에게 숭조사상과 청해이씨 가훈을 전승하는데 모범을 모이셨다. 특히 무후공 묘지가 도시개발로 이전하게 되었을 때 직접 운구하여 독정리 세장지에 모시게 하였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 받아 2023년 대종회 정기총회에서 청해이씨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어 <청해이씨를 빛낸 인물상>을 수상하였다.
李應燮(이응섭) 선생
李應燮 선생은 추밀공 세번.세온공파 양덕문중 출신으로 월남 피난민 1.5세대이다. 역사에 조예가 깊고 탐구심이 많아 오랫동안 청해이씨 시조 이지란과 선조들의 사료를 연구하여 청해이씨 관련 서적을 30여권 발간하여 청해이씨 뿌리를 찾고 후손들에게 알리는 일에 몰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