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제문

1) 始祖 靑海伯 李之蘭 致祭文( 시조 청해백 이지란 치제문)

영조대왕(22년) 치제문 병인(1746) 9월

신령님께 고합니다. 장군은 용을 받들고 봉황을 도와 북쪽에서 일어나 우리 태조를 도와 한양 도읍을 세우니 이름 철권에 오르고 공훈은 한 나라를 덮어 수백 대를 지나도록 생생하도다. 이제 유상을 보니 그 정대하고 강직했던 기질이 자연 마음에 떠올라 이 글을 지어 제관을 보내 잔을 드리니 내 잔을 받아 흠향하소서

2) 영조대왕(26) 치제문 경오(1750) 9

하나님은 세상이 어지러워짐을 측은히 여기사 神武(신무)한 태조를 내보내고 또 영웅호걸을 탄생케 해서 날개와 깃처럼 돕게 하였다. 오직 청해백이 우리 태조가 태어날 때에 같이 태어나서 구름이 용을 쫒듯 바람이 범을 쫓듯 분발해 일어나서 달동 싸움에 납합출을 항복받고 황산싸움에서 왜장의 이마를 쏘아 뚫고 위화도에서 대의를 밝혀서 선을 돕고 악을 없애서 나라를 세워 천지에 맹서하여 성을 주고 땅을 주었다. 큰 공을 세우고 물러났으나 태조의 사당에 같이 모셔서 천만년 태조와 함께 누리게 하였다.

화상을 보고 제향의 북소리를 들으니 장군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며 수백 년 된 오늘날 글을 지어 제사를 지내게 하니 때는 다르나 이것도 연분인가 하여 선부에 명령해서 장군의 사적을 다시 기록하게 하였다. 마침 온궁으로 가는 길에 장군의 사당 앞을 지나게 되므로 장군의 위대한 공을 흠모해서 제관을 시켜 제사를 지내노라

3) 영조대왕 치제문 경무(1790) 2

하늘이 임금을 내게 되면 도울 사람이 또한 그때를 따라서 나오게 되느니라. 태조가 창업하실 지음에 청해백이 도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수많은 사람중에서 참다운 주인을 만나 바람과 구름이 얽히듯 정분이 친밀해서 산천을 주름잡고 칼날을 휘둘러 신무를 도와 팔도가 통일되었다.

천지에 맹서하니 둘도 없는 큰 공이다. 모든 영웅 열사가 공을 따를 사람이 어디 있나. 그 전부터 해마다 제사를 지내왔고 특히 영조대왕께서 화상을 칭찬하였고 제물을 갖추어서 제사를 지내셨다. 나도 마침 사당 동네를 지나게 되어 잠깐 걸음을 멈추고 지나간 일을 추모하며 사신을 시켜 제사로 나의 뜻을 표하노라.

4) 정조대왕(19) 치제문 을묘(1795) 2

씩씩한 청해백은 개국의 원훈이다. 버들잎을 뚫을 수 있는 활 재주를 가졌고 삼군의 장수를 빼앗을 만한 용맹이 있었다. 옳은 임금을 만나서 용의 비늘과 봉의 날개와 같이 받들고 도왔다. 관북에서 태어나서 대공을 세워 이름이 사기에 기록되고 畵像은 기린각에 걸려 있도다.

믿음을 지키며 권세를 버리니 곽자의처럼 복이 많도다. 우뚝한 옛 사당이 저 언덕에 있어서 영혼은 원침을 둘러싸고 영기는 산천처럼 웅장하도다. 去年에 사당을 중수해서 이제 준공을 보게 되었기에 지나는 길에 수레를 멈추고 영웅의 기풍을 잠깐 구경하노라.

(정조대왕 즉위 19년 閏 2월 12일에 또다시 융릉을 참배할 때 부호군 윤득규를 제관으로 삼아 청해백 사당에 치제하시다)

5) 순조대왕(4) 치제문 갑자(1840) 9

하늘이 때를 맞추어 영웅을 탄생시키니 고명한 재주는 일월을 흔들리며 바람과 구름을 마음대로 하여 천지를 정돈해서 개국에 세운 큰 공은 바다보다 깊고 태산보다 높아서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혁혁하여 부녀자와 아이들까지도 이름을 외게 되었다.

교외에 사당을 세워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도다. 선왕께서 화상의 늠름함을 찬양하여 이미 그 공덕을 칠분이나 밝혔다. 선왕의 능침을 다녀오는 길에 추모의 마음으로 사신을 시켜서 영혼을 위로하니 흠향하소서.

(순조대왕 즉위 4년 9월 27일에 수원에 있는 아버지 정조대왕의 건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예서좌랑 박정검을 치제관으로 삼아 청해백 사당에 치제케 하였다)

6) 순조대왕(10) 치제문 경오(1810) 12

용이 하늘로 뛰어올라 바람과 구름을 타고 다니듯이 때를 만나 재주를 발휘해서 큰 공을 세워 이름이 사기에 올라서 부녀자들까지도 알게 되었고 선왕께서는 화상을 찬양하는 시까지 지으셨다. 사당이 나다니는 길 가까이 있어도 황천에서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로다. 그 옛적 일을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도다. 영명한 혼령은 내 술이 맛이 없다 하지 말고 흠향하소서.

(순조대왕 즉위 10년(1810) 7월 27일 수원에 있는 선왕의 능을 참배할 때 청해백의 사당으로 제관을 보내어 치제하고자 하였으나 뒤로 미루어져서 그해 12월 15일에 예조좌랑(정6품 벼슬) 민영세를 제관으로 삼아 치제하게 하였다)

7). 순조대왕(10) 치제문 경오(1810) 12

옛날 임신년(1392)에 태조께서 하늘의 명을 받아 왕위에 오르셨다. 초년부터 태조가 천명을 받은 것을 알고 영특하고 호걸스럽게 태조를 돕기 위해 야인으로 서로 만나서 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교분이 깊었고 버들잎을 맞히는 뛰어남 궁술로 큰 공을 많이 세워서 아지발도를 죽이고 여진을 귀순시키며 의병을 일으켜 2, 3 동지와 협력해서 나라를 창건하니 천지에 맹서하여 고와 낙을 국운과 같이 해서 이름이 사기에 빛났다.

임금의 신임이 제일 두터워서 청해백에 봉하였으니 당나라의 이세적과 같고 주나라의 소공과도 같아서 기린각에 이름이 오른 영광은 천추에 빛나 있다. 대통은 끊임없이 전해와서 개국하던 그해 임신년이 돌아왔으므로 창업하던 그때의 일을 더듬어 보니 실로 감개무량하도다. 오늘날 우리가 무궁한 복록을 누리게 된 것은 실로 창업할 때에 우리에게 튼튼한 기반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큰 공을 세운 경은 수백 년 뒤에 태어난 우리에게 기맥이 서로 통하니 감동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전에서 잔을 드리니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새로워지도다. 원 제사는 함경도에서 지내나, 이번 임시 제사에 대하여 영혼은 부족하다 마시고 흠향하소서.

(순조대왕 즉위 27년(1812) 7월 27일 태조 임금이 조선왕조를 창건하여 왕위에 오른 지 7 회갑(420년)이 되는 기념일이다. 이에 순조임금은 이날을 맞이하여 특히 개국공신을 흠모하는 감회가 새로이 떠올라 특별담화를 한 동시에 각 정부기관으로 하여금 그 공신의 사당에 예관을 보내어 치제케 하였다. 이때에 청해사에 치제를 맡은 예관은 이중진이었다)

8) 헌종대왕 치제문 계인(1843) 2

태조가 하늘의 명을 받아서 처음 왕위에 오르신 거은 옛날 임신년이었다. 영웅호걸들이 때를 맞춰 태조의 보필이 되어서 여러 차례 난리를 평정하였음은 한나라의 삼걸과 같도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오직 경은 태조의 장래를 알고 바람에 구름 쫓듯 군신이 서로 만나서 버들잎을 맞히는 특이한 궁술은 사냥할 때 미리 알게 되었고 여진을 항복받고 아지발도를 무찔러서 개가를 올리고 대의를 굳게 지켜 대업을 이루어서 화상은 기린관에 높이 걸리고 이름은 사기에 빛나서 대대로 자손이 복록을 누리고 오늘날까지 국운이 흥왕한 것은 실로 경의 위대한 공훈의 덕택을 입은 것이다. 지나는 길에 사당을 바라보니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새로워서 사신을 시켜 잔을 드리노라.

9) 철종대왕 치제문 임자(1852) 11

신성한 태조가 대업을 이룩하심에 하늘이 원훈 청해백을 탄생하시어서 서상이나 포악처럼 충성을 다하게 하였다. 민간인으로 계실 때부터 정다운 친구로서 천산싸움에 화살 몇 개로 오랑캐의 혼을 잃어버리게 하고 운대(공신각)에 화상이 높이 결려서 사기에 이름이 실렸었다.

큰 공은 세우고 산야에 물러나서 벼슬을 탐하지 아니하고 절개를 지킨 것은 더욱 특이하고 임금 앞에서 간신이 장래를 미리 판단한 그 높은 식견은 누구라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은혜를 베풀어서 성을 주고 작위를 높혀서 태조의 종묘에 같이 모셨고 무덤에서 금이 온다는 글자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저승에서 혼령이 나라를 보호해서 자손 대대로 벼슬을 하여 혁혁하도다. 지나는 길에 추모하는 감화가 간절해서 사신을 시켜 잔을 드리니 흠향할지이다.

(철종임금이 즉위 3년(1852) 11월 18일에 선왕처럼 수원에 있는 선대 왕의 능을 참배하러 지나는 길에 예조좌랑 금정원을 제관으로 삼아 청해백 사당에 치제케 하였다)

10) 世宗大王武厚公 李和英 致祭文(세종대왕의 무후공 이화영 치제문)

세종대왕 6년 갑진 10월에 판우군부사 이화영에게 賜祭(사제)하였는 바 그 제문에 하였으되 壽(수)하고 夭(요)하고 生(생)하고 死(사)함은 진실로 稟受(품수)한 天命(천명)이니 도망하기 어렵고 살아서는 영화롭게 하고 죽어서는 애도하여줌은 실로 功(공)에 보답하는 떳떳한 禮(예)라 생각하건데, 경(경)은 맹서하 공신의 맏아들이오 이름난 장가의 맏아들로서 침의하면서도 용감하고 충근하면서도 소심하므로 드디어 성조의 지우하심을 받아 이에 원종의 공로가 있으므로 하여 일찍 포창하는 은전을 받들었으며 경진년에는 마음을 합 하고 힘을 다하여 나의 소고를 도왔고 임오년에는 또 능히 의로운 생각으로 몸소 달려와 성심껏 공순한 도리를 다 하였으니 그 공이 성하도다. 이러하므로 토전과 장획을 주었고 전후하여 녹권을 주어 후한 상을 더하였으며, 내려오는 조정에 연달아 벼슬하여 관위가 숭품에 이르렀고 항상 총계의 소임을 맡으매 사졸이 그 은위에 감복하였으니 가히 간성의 장재라 하겠고 능히 내부의 무훈을 계승하였다 할찌라. 어찌 나로 하여금 영년의 감회가 없게 하리요. 이에 예관을 보내어 총유을 올리게 하노니 슬프다. 장직한 용모가 이 세상에서 멀어졌음을 개탄하여 은혜의 몇 가지로 특히 구원의 영령을 위로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