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

1) 靑海伯 陵(청해백 능)

함경남도 신북청읍 안곡리 별안대에 있다. 이곳에는 청해백의 사당과 서원이 있다. 산수가 청아하고 풍경이 좋은 별안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좌향은 갑좌경향이다. 능소의 모양은 왕능처럼 꾸며져 있어서 사방둘레에 수석을 두었으며 서남쪽에 돌로 만든 함이 있는데 함 머리에는 구름과 용의 머리가 그려져 있고 그 함에는 청해백이 돌아가셔서 시체를 목욕시킨 물을 담아두었는데 그 물이 마르지 않고 있다고 한다.

2) 別雁臺(별안대)

1398년 1, 2차 왕자의 난으로 이태조가 고향 함흥 궁으로 하야하고 청해백은 고향 박청사(현 북청)으로 돌아왔다. 별안대는 북청부에서 동쪽으로 약 20리쯤 되는 양가면 안곡에 있으며 이곳에서 청해백은 은거하며 별장을 짓고 연못을 파고 기러기를 기르며 산수와 자연을 사랑하며 여생을 보냈다. 기러기 길렀기 때문에 후세인들은 이곳을 별안대라 불렀고 지금도 그 연못과 터가 남아있다고 한다.

3) 遺墟地(유허지)

청해백이 은거하며 말년에 사셨던 곳. 함남 박청사(북청의 옛 이름) 세섬리(현 서도리)이며 은거하셨던 집 동쪽에 우물을 파고 우물 동쪽에 괴하나무를 심었다. 후세인들은 괴정촌 또는 괴정리라고 불렀다. 이곳 사람들은 나라에서 청해백의 부인 함안군 부인 윤씨에게 하사한 혜안택주라는 택호를 그대로 호칭하여 이 부락을 한 때 혜안촌으로 불렸다고 한다.

4) 괴정

청해백이 현 북청군 소후면 서도리에 낙향하여 동네 중앙에 굴정하고 그 주위에 괴하나무 수십 주를 심었다. 그 후 이 우물을 괴정이라고 불렸다. 샘물 맛이 산감하며 동네 수백 호에서 이물을 사용하여도 부족함이 없었고 아무리 가물어도 수량이 감소되는 일이 없었다. 장마가 져서 동리 다른 우물이 다 탁해져도 이 괴정물 만은 깨끗하여 동네 사람들의 음용수로 상용하였다. 이 우물을 판지 600여 년간 부락에는 백치 또는 불구자와 전염병이 생긴 일이 없어서 부락 사람들은 청해백의 은덕이라 하며 이 우물을 장수신천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이 괴정에 얽힌 근세 實話(실화) 몇 가지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1914년 갑인년 홍수 때 1동이 전부 침수되어 동중의 우물 10여 곳이 모두 탁수로 변했지만 유독 괴정 우물만이 맑은 그대로 유지되어 동민의 갈증을 해결했다고 한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국 각처에 전염병이 성행하여 사망자와 이환자가 많았고 그해 10월에 독감이 유행할 때에도 이곳 괴정 마을만 단 한 사람의 이환자도 없었다고 한다.

舊韓末(구한말) 청해백의 19세손 이재우 씨가 과거보러 가는 날 새벽에 괴정우물을 길어 밥을 지었더니 수수밥같은 벌거스레한 길조가 보여 수수밥을 먹고 과거를 보러 가 과거에 급제하였다고 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미리 알리는 예보도 있었다고 한다. 8.15해방 얼마 전에 괴정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서 동네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얼마 후에 해방이 되었다고 한다.

5) 靑海祠書院(청해사 서원)

조선 개국 원훈공신 청해백 양렬공 이지란 공을 봉사하는 서원으로 청해백의 고향이며 능소가 있는 함경남도 북청군 신북청면 안곡리에 있다. 창건 당시에는 소박한 영당으로 충열묘라 칭하고 일명 안대사라고도 하였다. 본시 북청군 유림에서 숭정 4년(1361년) 안대사 서원을 창건하였고 숭정 기원후 267년(1624년) 조선 헌종께서 청해사라는 액을 하사하심에 청해사 서원으로 개칭하였다.

6) 三義祠(삼의사)

삼의사는 청해이씨, 전주이씨, 김령 김씨 3성의 북처입북 분파 시조를 봉안하고 후손들이 춘추로 소도원 결의를 한 선조의 의리를 추모하고 친목을 돈독히 하는 연례행사를 하는 사당이다. 한말 고종황제 광무 5년(1902년) 항명으로 함남 북청군 북청읍 동리 덩덕산록에 건립하였다. 여기에 봉안돤 삼위신은 청해백 양렬공 이지란, 전주이씨 완풍대군 이원재(이성계의 백씨), 김령김씨 익화군 충민공 김인찬이다. 전주이씨로 소도원 결의를 한 사람은 이태조이나 이태조는 군왕이기에 이태조 대신 이태조의 형님인 완풍대군 이원재로 하였다.

소도원결의는 중국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한 것과 같다. 소도원결의를 하였을 때 文人(문인) 출신인 김인찬은 다음과 같은 盟文(맹문)을 지어 하늘에 고하고 三人이 결의를 맺었다. 맹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결의하여 한 몸이 된 우리 3인은 같은 세대에 나서 일생의 고락을 같이 하는 오직 한 마음뿐이다. 才操(재조)는 가히 3천 제자를 가진 공자를 바라보고 몸은 늙어서 강태공을 쫒겠다. 세상을 건지고 백성을 편하게 할 것은 군주의 할 일이요, 임금을 섬기고 기강을 바로잡는 것은 나의 할 일이다. 관우. 장비의 의는 지기상합하는데 있고 어찌 후세 사기에 공이 기록되기를 위함이랴”

7) 송포백운

송포는 청해백이 현 북청군 서도리를 은거지로 정한 후 오리쯤 떨어진 중산맥 하단 방축산 중턱 안좌형 고개가 보여 지세로 보아 앞으로도 그 부락에 화재와 동족간 불화를 가져올 기세가 보여 이를 제압 방어하기 위해 부락과 방축산 중간에 수많은 소나무를 심어 안좌형 고개가 보이지 않게 하여 마을에 재앙을 에방하였다고 한다. 이 소나무 숲 단지를 송포라하며 단오절에는 부녀자들의 그네뛰기 장소였고 하절기에는 피서지로 동절기에는 흰눈이 소나무에 내린 모습이 백화가 송지에 만개한 형상이며 바람에 휘날릴 때는 흰 꽃이 낙화하는 것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