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宗會 沿革

– 대종회 연혁 –

청해이씨 대종회는 1970년에 설립되었다. 대종회가 설립되기 이전에는 각 문중별로 시조와 문중 중시조에 대한 제향이 있었고 각 문중이 통합하여 합동으로 제향을 지내지를 못하였다. 각 문중별로 가까운 문중끼리 서로 교류하는 곳도 이었으나 문중 전체 모임을 갖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8.15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 시 1.4 후퇴 시기까지 이북지역에 청해이씨 집성촌이 있던 함경남도 북청과 평안남도 양덕군의 청해이씨 종인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공산주의 학정을 피하여 대거 월남하게 되었다. 남한 땅에 내려와 힘들었던 피난 생활과 남한 사회 정착을 위해 생활전선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던 청해이씨 실향민 1세들은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두고 온 고향과 혈육의 정을 더욱 그리게 되었고 남한 땅에서 뿌리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북지역에서 청해이씨 본향인 함경도 북청과 더불어 가장 많은 청해이씨가 살고 있던 추밀공 세번공. 세온공 양덕파 문중에서는 남한 땅에 청해이씨 대종회의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동아일보 주필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역임한 언론계에 원로이신 이을(李乙–개명전 在賢) 선생이 주도하에 건국대학 교수였던 壹球(일구) 선생과 교사였던 仁俊(인준) 선생이 남한의 각 문중 주로 무후공 독정리 문중의 종인들과 협의하여 청해이씨 대종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에 추밀공 세 번공.세온공 양덕문중 李乙(이을) 선생, 상무이사에 역시 양덕 문중에 仁俊(인준) 선생이 맡아 청해이씨 초대 대종회 집행부를 구성하고 출범하였다.

특히 상무이사를 맡았던 仁俊(인준) 선생은 문장력이 뛰어나 대종회의 각종 문서 작성과 청해백 사료 정리 등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초대 상무이사를 시작으로 7대에 걸쳐 상무이사로 헌신하여 대종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70년도에 창립된 청해이씨 대종회는 남한지역 집성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10여개의 문중과 이북에서 내려온 추밀공의 후손인 승노공파 함남 북청문중과 세번.세온파 평남 양덕문중의 연합체 성격의 대종회이다. 청해이씨 대종회는 시조인 청해백을 비롯한 각 문중 중시조님들을 합동으로 제례봉양하고 선조들의 가훈을 올곧게 이어받으며 종인들의 화목과 담함을 이루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2023년 4. 30일 청해백 춘제일에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3월에 있었던 임원회의에서 추대된 추밀공 세번. 세온파 양덕문중 明遇(명우)가 제25대 대종회장에 취임하여 대종회의 발전과 종원들의 돈목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있다.